사실 연남동에 방 세 개짜리 전세를 구하면서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중개인이 위임장도 없이, 자기랑 계약서를 쓰면 된다고 우겼던 것이다. 입금만 집주인에게 하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요즘도 그런 경우가 있을 것이고, 사기를 당하는 사람도 있고, 무사히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비록 젊었지만 꽤 조심스러운 성격인 데다가 몇 번 중개인의 농간을 경험한 터라, 절대 안 된다고, 주인을 직접 만나서 계약서를 써야겠다고 우겼다.
그래서 저녁 무렵 만난 중개인과 나는 중개인의 자가용을 타고 멀리 집주인의 자택으로 갔다. 집주인이 몸이 아파서 밖에 나올 형편이 아니라고 했다.
중년이 넘어 보이는 여성분이 누운 채로 우리를 맞이했다. 몸이 아파서 이런 꼴이라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다지 병색이 드러나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다만 표정이 많이 어두웠다. 겁에 질린 표정이랄까.. 그러면서도 “뭘 그리 못 믿어서 이 멀리까지 찾아왔어요?” 라면서 농담 비슷한 핀잔을 건네 다같이 웃었다.
이사를 한 집은 일곱 세대가 사는 필로티 구조의 다세대주택으로 1층은 주차장, 2층부터 3층까지는 2세대씩, 4층은 한 세대가 쓰고 있었다. 모두 아픈 주인의 소유였고 일곱 세대는 그녀의 세입자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집인 4층의 거주자는 집주인의 동생이라고 했다. 그가 이 빌라의 관리를 맡고 있으니 매달 3만원씩 내야 하는 게 세입자들의 의무였다. 하지만 건물은 공용부는 쓰레기통을 방불케 할 정도로 더러워서 무슨 관리를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아주 가끔 공용 공간에서 쓰레기를 치우면서, 집주인의 동생이자 4층의 세입자이며 이 건물의 관리자인 중년 남성이 다른 거주자들을 욕하며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번은 무슨 일인지 나랑 언쟁이 생겼는데, 자기가 집주인이니 자기 말대로 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집주인이라고요? (내가 집주인을 만나 계약까지 했는데, 여자 분이었는데?)” 라고 의문문을 던지며 빤히 쳐다봤더니, “집주인이나 다름없으니까, 흠흠…” 하고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난 후 어느 날 갑자기, 건물이 깨끗해졌다. 온갖 쓰레기가 쌓여 있고 옆 건물 자동차가 뒷부분을 반쯤 걸쳐 주차해두던 화단도 깨끗이 치워지고 커다란 바윗돌 두 개로 막히는 일이 생겼다. 항상 눈살이 찌푸려지던 풍경이어서 잘 됐다 싶었는데, 또 어느 날 큰소리가 들려서 창밖을 내다보니 옆 건물 여자가 우리 건물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웬 남자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건물의 주인이 바뀐 모양이었다. 새로운 주인이 건물 화단에 바윗돌을 갖다놓아서 주차가 힘들어진 옆 건물 거주자가 욕설을 퍼붓는 중이었다.
나는 부동산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건물 새주인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몇호에 사는 세입자인데, 덕분에 건물이 깨끗해져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집주인도 ‘고마워요. ^^’ 하는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새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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