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빗댄 자서전

2-2 손님을 위한 집, 테라스 같은 공부방

fictocritical 2019. 3. 8. 14:17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 관사의 마당 가장자리에는 멋진 정원수들이 심어져 있었고 한 켠에는 연못도 있었다. 하얗고 빨간 물고기들이 떠다녔다. 물론 이런 집을 전근 내려온 사람이나 그 가족이 관리할 수는 없었다. 관사에는 관리인 부부의 거주 공간도 함께 있었다. 2가구가 살도록 분리되어 있었고, 관리인 부부의 거주 공간은 우리가 사는 공간보다는 약간 작았다.

그러다 보니 꽤 커다란 2층집이, 막상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다. 아마도 가족이 내려와 ‘살기’까지 할 거라 염두에 두고 지어진 집은 아닌 듯했다. 1층의 안방은 화장실은 물론 드레스룸까지 딸려 있었다. 그리고 1층에는 널찍한 거실, 그리고 주방과 분리된 멋진 식당이 있었다. 그게 다였다. 

나머지 방이 있는 2층에는 방이 두 개뿐이었다. 게다가 옷장과 더블침대가 꽉 차게 놓여 있는, 크지 않은 방들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방이라기보다는 손님방에 가까운 느낌. 그래도 우리는 두 자매니까 별문제 없을 수 있었다.

문제는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는 거다. 나는 서울에서 부엌 옆 좁은 식모방으로 들어가면서까지 혼자 방을 쓰려 안간힘을 쓰던 사춘기였는데, 어쩔 수 없이 동생과 같은 방을 써야 했다. 

한 명은 침대에서 자고 한 명은 바닥에서 자기로 했다. 처음에는 침대에서 자려고 다투었지만, 관사에 비치된 낡은 침대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아챈 우리 자매는 곧 서로 바닥에서 자겠다고 싸우게 됐다.

그나마 책상은 둘 곳이 없었다. 그래서 2층의 테라스 비슷한, 휑한 공간에 책상 두 개를 놓고 공부방으로 사용하게 됐다.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그 공부방에서 내 생애 가장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됐다.

알고 보니 강릉은 교육열이 높은 도시로, 반 평균 학업 수준이 서울의 내가 살던 변두리 동네보다 훨씬 높았다. 나는 반에서 일등도 해본, 공부를 꽤 잘하는 아이였는데, 전학 간 지 일주일도 안 돼 치른 월말 평가 시험에서, 반토막 난 성적을 받아들고 기겁했다. 다친 자존심을 부여잡고 열다섯도 안 되는 나이에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