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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동네 이야기

5-3 둘만의 집들이

나의 엉망진창 집들이 파티가 끝나고 나면, 미처 참석하지 못했던 친구들은 개별적으로 내 집을 찾아와서 술판을 벌이곤 했다. 독립해서 사는 친구 집은 일종의 공짜 술집으로 변해버리던 시절이었다. 다들 전형적인 패턴이었던 가운데, 꽤 특이했던 한 친구의 방문이 기억에 남는다.

의외로 친구들중엔 나처럼 홍대앞에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부모와 계속 살든지 아니면 좀 더 좋은 집을 찾아 도심에서 멀리 나가서 집을 구하곤 했다.

그녀는 마침 서교동에 사는 친구였다. 나의 집에서 몇백미터 떨어진 곳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지독한 직장을 다니고 있던 터라 나의 집들이에도 오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내가 이사하고도 한동안은 방문을 못했다.

어느날 갑자기 전화를 해서 드디어 일찍 퇴근하노라고 했다. 집 앞 가게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지쳐보이는 얼굴로 곧장, 식료품점이었던 가게로 들어가 이것저것 집기 시작했다. 과자를 한 아름, 빵 한 아름, 소시지 몇 통, 건어물 몇 봉지, 아이스크림 한 아름, 음료수를 몇 병이나. 나는 이 많은 걸 어떻게 (둘이) 먹냐며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들은 척도 않고 모두 계산을 한 다음 나의 원룸으로 들어와 냉장고를 차곡차곡 채우고, 내가 내놓은 독특한 스파게티는 거절한 다음, , 과자, 소시지, 건어물을 차례차례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실컷 먹어야겠다는 거였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냉장고에 넣은 아이스크림과 음료수까지 다 먹을 배는 없었다. 친구는 한참 먹고 이야기를 마치더니 집에 가서 자야겠다고 일어섰다. 그리고 나의 냉장고를 열어 자기가 사온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다 꺼냈다. 그리고 다시 봉지에 담더니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갔다.

나와 내 친구들이 서른도 안 되었던, 젊디젊던 시절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