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은 늘 골목과 공터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골목에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을 놀이의 종목은 다양했지만, 대체로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술래잡기, 땅따먹기, 고무줄. 술래잡기는 사냥 연습이고 땅따먹기는 전쟁과 협상 연습이며 고무줄은 채집과 경작 연습이 아니었을까? 어른 없이 꼬마들끼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집단생활을 연습하고 매일 넘어져 무릎이 까지던 아동기의 생활 풍습은 이제, 20세기 후반의 짧은 역사로만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유년 시절은 왠지 ‘개’와 연관된 추억이 많다. 우리 집 바둑이가 대문이 열린 틈을 타 쏜살같이 뛰쳐나가면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찾던 추억. 옆집의 진돗개가 너무 사나워 옆집과 함께 쓰는 담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무서워하던 기억. 그리고 저기 산 아랫집에서 키우던 세인트 버나드가 가끔 도망쳐 나와 공터를 배회하면 뛰어놀던 아이들이 모두 자기 집으로 피신하던 기억.
우리가 밖에서 노는 동안 동네 엄마들도 대문 밖에 나와 골목길에 모여 수다를 떨곤 했다. 간혹 화장품 등 각종 방문 판매원이 등장하면, 한 집에 모여 설명도 듣고 물건도 사고 마사지도 받았다. 그러다가 점차 우리 동네는 애어른 할 것 없이 종교를 중심으로 모임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성당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어느새 그들끼리 기도 모임을 하고 소풍을 가며 나머지 이웃들과의 교류는 거의 끊어졌다.
엄마들은 우리 꼬마들에게도 기도 모임을 시켰다. 10여 가정에서 20여명의 아이들을 매주 한 집에 모아놓고 묵주기도 한 단을 하게 했는데, 30분~1시간 동안 기도문 서너 가지 외우기를 반복하는 거였다. 그런 지루하고 쓸모없는 일을 열 살도 안 된 꼬마들을 모아놓고 시키다니, 지금 돌이켜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 지방 선거가 시작되어 우리 동네 성당 아저씨 중에서 구의원으로 나가는 사람이 생겼다. 그러자 성당 엄마들은 우리 꼬마들에게 묵주 대신 편지지를 나눠주며 다른 동네 이웃들에게 성당 아저씨를 구의원으로 뽑아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를 쓰게 했다. 대강의 내용을 말해주고서 각자 알아서 쓰라고 했다.
묵주기도보다야 편지 쓰기가 훨씬 재미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학교에서 국군 장병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써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유세 편지도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색색의 색연필로 예쁘게, 몇 주 동안 열심히 편지를 썼다. 하지만 성당 아저씨는 결국 구의원 선거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대신 그 다음해에 그 아저씨 네 부부는 늦둥이 딸을 낳고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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